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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미국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 프로필, 수영 계기, 성적, 기록

솔호랑 2023. 1. 3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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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레전드 수영 선수인 마이클 펠프스는 최연소 세계 신기록 보유자이며, 최다 메달 보유자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4관왕을 4번 달성한 선수이자, 올림픽 역사상 한 대회에서 8개의 금메달 석권과 2 대회 연속 8개의 메달을 석권한 선수입니다. 

또한 그의 굉장한 노력과  반칙 수준의 신체 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점, 또한 ADHD를 극복한 사례도 매우 유명합니다. 

타고난 신체 스펙은 수영 그 자체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어마어마한 연습량을 보였는데 은퇴 후 인터뷰에서 6년 동안 단 하루도 훈련을 쉰 적이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정도 훈련량은 수영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죠. 2008년 방송된 EBS '다큐 10'에서 “저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몰라요. 날짜도 몰라요. 전 그냥 수영만 해요.”라고 말한 것은 펠프스의 훈련량과 노력을 상징하는 유명한 말입니다.

펠프스 사진
ADHD를 이겨내고 수영 선수로 우뚝 선 마이클 펠프스 <출처: Wikipedia>

레전드 미국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 프로필, 수영 계기, 성적, 기록 

마이클 펠프스 프로필

  • 본명: 마이클 프레드 펠프스 2세 / Michael Fred Phelps II
  • 출생: 1985년 6월 30일 (37세) / 메릴랜드 주기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시기 볼티모어
  • 국적: 미국 
  • 국기: 미국
  • 신체: 193cm, 90kg, 320mm, 201cm(윙스팬)
  • 종목: 수영
  • 주종목: 접영, 자유형, 배영, 혼영
  • 종교: 개신교
  • 가족
    배우자 니콜 존슨(1985년 7월 12일생)
    장남 부머 펠프스(2016년 5월 9일생)
    차남 베킷 펠프스(2018년 2월 12일생)
    삼남 매버릭 펠프스(2019년 9월 9일생)

 

마이클 펠프스 수영 계기

1985년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경찰관인 아버지와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7살 위의 힐러리와 5살 위의 휘트니 두 누나가 있다. 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해서 싱글맘이 된 어머니 밑에서 컸다. 큰 누나는 대학교 때까지 선수 생활을 했고 작은 누나는 14세 때 미국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에 나갈 정도의 엘리트 체육인이었다. 당연히 펠프스가 처음 수영을 배울 때는 힐러리와 휘트니의 '동생'으로 불렸다고 한다.

누나들을 따라서 노스볼티모어 수영클럽(North Baltimore Aquatic Club)에 6살 때부터 다녔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땐 얼굴을 물에 담그기 무서워해서 배영부터 배웠다고 한다. 이 나이 때에는 당연히 수영만 하는 게 아니고 ADHD 때문에 주체 못 하는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서 야구, 농구, 라크로스, 미식축구 등 닥치는 대로 시켰다고 한다.

 

마이클 펠프스 선수 경력

밥 보먼 코치와의 만남

본격적인 선수 생활은 9살때 코치 밥 보먼을 만나면서이다. 보먼 코치는 선수시절엔 별 볼 일 없어서 일찌감치 은퇴하고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아동심리학을 전공했다. 명코치로 이름을 날리려는 차에 키우던 선수가 국가대표가 되자 배신을 때리고 다른 코치에게 가버리자 수영계를 떠나서 볼티모어 주위 학교에서 농장경영학을 배워서 말(馬)을 키우려고 하였다. 남는 시간에 알바로 수영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취직한 노스 볼티모어 수영클럽에 가서 만난 게 펠프스다. 보먼의 실력에 감탄한 총코치가 정규직을 제안했고 펠프스 전담을 맡을 것을 조건으로 수락했다고. 그러나 둘 사이는 20여 년 동안 화목하지만은 않았고 펠프스가 대들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깨질 위기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잘 극복해냈다고 한다.

보먼 코치는 자존심, 승부욕이 강한 펠프스를 다루는 스킬이 만렙으로 펠프스도 ‘그는 완벽주의자고 나는 솔직히 얼간이다’라고 인정할 정도다. 어쨌든 미시간 대학 코치로 보먼이 영입되자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펠프스도 미시간 대학으로 진학했고 수영선수 경력 내내 티격태격 하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펠프스가 은퇴 번복을 선언하자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코치를 맡아 함께 올림픽을 준비하였으며, 밥 보먼은 미국 수영 대표팀의 총감독으로 선출되어 펠프스의 은퇴 경기까지 함께하였다. 참고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3달 전에 펠프스의 아들 부머 로버트 펠프스가 태어났는데 이 '로버트'라는 미들 네임이 바로 밥 보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밥은 로버트의 애칭인데 스승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붙인 것으로 펠프스가 직접 생각해 냈다고 하며 보먼이 이 사실을 듣고 매우 감격했다고 한다. 사제 지간의 깊은 정을 볼 수 있는 일화이다.

 

본격적인 두각

어릴 때부터 대회란 대회는 모조리 휩쓸었고 12세 때 서너 살 많은 선수들이랑 같이 연습했다고 한다. 애초에 보먼이 주목한 점이 펠프스의 똘끼 가득인 멘털과 나이에 비해 큰 체구라서 선수로 대성할 만한 싹수라고 여기고 전담코치를 맡았는데 예상보다 더 두각이 빨리 나타났다. 대회를 휩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제 나이 대 주니어 기록이란 기록은 밥 먹듯이 깨고 다녔다. 심지어 자기 나이보다 더 많은 주니어 기록까지 깼다. 보먼 코치는 펠프스의 어머니 데비 펠프스에게 '마이클은 이제 올림픽을 준비해야 된다'라고 선언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미국 대표로 15세에 약 100년 만에 최연소 선수로 발탁되었으나 접영 200m 결선 5위에 그쳤다. 그러나 2001 세계선수권에서 최연소(만 15세 9개월)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프로로 전향하였다. 이미 이때부터 접영에선 먼치킨으로 알려져서 일반인 상대 강습 비디오도 찍을 정도라고 한다. 고교시절엔 올림픽 준비로 학업을 1년 꿇었다.

펠프스 2000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출전 당시 펠프스 <출처: corbis>

 

2004 아테네 올림픽

이후로도 기량이 점점 일취월장해서 접영에서 개인혼영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각종대회에서 금메달을 '밥 먹듯이' 땄는데 2003 세계선수권에서도 금 4 은 2의 기록을 냈고 올림픽 대표로 무려 8 종목(개인종목 5개, 단체종목 3개)의 국가대표로 뽑혔다.

참고로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선 종목당 한 나라에서 선수 두 명까지만 출전이 가능한데 수영 최강국인 미국에서 한 종목에서 국대로 뽑혀도 세계정상급인데 하물며 한국에서 양궁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할 때 난이도가 세계대회 메달권보다 어렵다고 하듯이 수영 종목에서 미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에서 뽑히는 건 매우 어렵다.

이때 8 종목을 보면 자유형 200m, 접영 100m&200m, 개인혼영 200m&400m, 혼계영 4x100m, 계영 4x100m&4x200m의 출전권을 따냈는데 개인종목서 원래 하던 영법인 접영과 개인혼영에서 자유형에 새로 도전한 이유가 ‘이안 소프와 겨루고 싶어서’라고. 원래 메달 가능성은 배영 200m였는데 메달 가능성보다 승부를 택했다. 실은 배영 200미터까지 총 9 종목의 출전권을 땄고 최종적으로 일정상 자유형 200m와 배영 200m 둘 다 나가는 방법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일정상의 어려움으로 한 종목을 택하는 선택에서 자유형 200m를 선택한다. 결과는 자유형 200m에서 동메달, 계영 종목에서 동료의 실수로 하나의 동메달을 추가하고 이어지는 나머지 6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땄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아테네 때 나온 8 종목에서 그대로 다시 나와 금메달 8개를 획득했다. 그것도 세계 신기록 7개와 올림픽 신기록 1개로 말이다. 참고로 동하계 올림픽 합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8개 이상 딴 선수는 6명에 불과하지만, 그 선수들은 3,4번의 올림픽을 출전한 데에 비해 펠프스는 단 한 대회에서 금메달 8개를 쓸어 담았다. 1972 뮌헨 올림픽에서 7개의 금메달을 차지한 마크 스피츠의 기록을 36년 만에 갈아 치운 것이다.

펠프스 스타트
펠프스가 물 속에 들어갈 때마다 금빛 메달을 하나씩 목에 걸고 나오니, 마지막 여덟 번째 금메달도 자연스럽게 건져 올렸다. <출처: JD Lasica at en.wikipedia.org>

  • 1st 개인혼영 400m: 헝가리의 라슬로 체흐와 미국의 라이언 록티를 여유 있게 따돌리면서 세계 신기록 4분 3초 84를 달성. 접영부터 선두로 치고 나갔다가 배영에선 따라 잡히고 평영부턴 차이를 벌리면서 자유형에선 독주했다. 참고로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 2nd 계영 400m(4 ×100m): 단체 종목 첫 영자로 나가서 호주의 에이먼 설리번에 이어서 2위로 들어왔다. 그렇지만 기록은 47초 51 기존 세계 신기록보다 0.01초 늦은 기록이었다. 당시 설리번은 47초 24로 세계 신기록을 깼다. 재밌는 점은 자유형 100m는 펠프스가 개인 종목도 안 나가는 서브 종목이라는 거다. 이후 2번째를 지나 3번째 영자자부터 프랑스에 밀리기 시작했으며 프랑스에는 이전 세계 기록 보유자인 베르나르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벌써 8관왕의 꿈이 멀어져 가나 했지만 미국은 당시 만 33세 제이슨 리잭이 기적을 일으켰다. 첫 50m에선 기록이 더 벌어지면서 마지막 50m 남기고 베르나르와는 0.8초 차이였지만, 리잭이 인생 최대의, 아니 수영 역사상 가장 극적인 질주로 0.03초 차이로 역전 성공. 리잭의 구간 기록은 46.06이었다. 이는 말이 안 나오는 미친 기록이다. 참고로 상술했듯 펠프스가 불참한 개인전 100미터 자유형에선 베르나르-설리번-리잭 순으로 금은동.
  • 3rd 자유형 200m: 미친 경기력으로 박태환을 거의 2초 차이로 따돌리면서 1분 42초 96 세계 신기록 달성. 박태환은 1분 44초 85. 3위로 들어온 피터 밴더케이는 미시간 대학교 수영부 클럽 울버린에서 같이 훈련하는 동료이다.
  • 4th 접영 200m: 종목의 의미가 없는 펠프스의 주종목이었다. 펠프스가 15세 때부터 가장 잘했던 종목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건 뭐 보나 마나일 거라 생각했으나 은근히 고전하였다. 펠프스 말로는 두 번째 턴을 할 때부터 수영 안경이 벗겨져서 물이 들어와 앞이 안 보이게 됐고 결국 직접 스트로크수를 세며 감으로 턴을 하고 찍으면서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경기 캐스터도 마지막 턴에서 펠프스가 너무 일찍 물 밖으로 나오자 '펠프스가 이상하네'라고 걱정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금메달을 땄고, 세계 신기록 달성. 그런데, 펠프스 본인이 당초 목표로 잡았던 기록보다 1초 정도 더 늦게 들어왔다고 한다.
  • 5th 계영 800m: 결과적으로 제일 쉬운 경기였다. 팀경기로 200m씩 4명이 릴레이 하는데 1번 영자로 나가서 당연히 1등으로 들어오고 세계 기록을 무려 5초 앞당기면서 미국팀이 우승했다.
  • 6th 개인혼영 200m: 개인혼영 400m의 판박이로 여유 있게 우승.
  • 7th 접영 100m: 문제의 경기다. 애초에 8관왕의 가장 큰 걸림돌로 우승 확률이 낮았다. 접영 200m와 달리 100m는 펠프스가 압도적이지 못한 편이었고 거기다 세르비아의 밀로라드 차비치 와 같은 팀 동료 미국 이언 크로커는 강력한 경쟁 상대였다. 스타트부터 느리더니 50m 턴에서 7등(혹은 6등)을 하며 역시나 힘드나 했지만 마지막 50m를 미친 듯이 달려서 차비치를 제치고 100분의 1초 차이로 역전 우승했다.
  • 8th 400m 혼계영: 올림픽 전부터 꿀로 봤던 종목. 접영의 펠프스를 제외하고도 모든 영법서 메달권인 선수들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금메달은 무난하다고 일찍부터 찍어놨던 종목이었다. 배영-평영-접영-자유형 순으로 진행되는데 3번째 영자로 나가서 혹시라도 파울이 안 나려고 일부러 스타트는 여유 있게 입수해서 2위였던 미국을 여유 있게 1위로 올려놓고 앵커에게 넘겨주었다. 펠프스 말로는 2번 영자까지 1위였던 일본의 접영 자유형 선수들이 기록들이 느려서 마음 편하게 했다고 한다. 참고로 여기서 디스 당한 일본의 자유형 영자는 NHK에서 제작하고 국내선 EBS에서 방송된 펠프스 다큐에서 다른 선수들이 펠프스 훈련 (허리에 납자루 차고 수직 돌핀 킥)을 따라 하지 못하는 비교 대상으로 출연한 사토 히사요시였다. 이 선수의 기록은 100m 48초 후반 대였는데, 펠프스가 앞서 자유형 100m에서 찍은 기록이 47.51초였다.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과 함께 행운까지 따라주며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무후무한 올림픽 8관왕을 달성. 당시 17일 12시 30분, 1위를 중국, 2위를 미국, 3위를 독일, 4위를 호주, 5위를 마이클 펠프스라고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저기에서 출발한 순위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대회에서의 금메달 8개가 상상이 잘 안 된다면, 대회 시작부터 19일까지 한국이 딴 전체 금메달 개수만큼 펠프스 혼자서 쓸어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8관왕을 달성하면서 세계 신기록 7개와 올림픽 신기록 1개까지 갱신했다. 한 대회에서 8관왕을 하는 것은 앞으로도 쉽게 나오지 못할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2011년

2009 세계선수권과 2011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했지만 동기부여가 잘 될 리도 없고 일부 종목은 출전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2009년에는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를 획득했고, 2011년에는 금 4, 은 2, 동 1개를 획득했다.

펠프스 본인은 2011년 세계선수권 대회 시작 전 인터뷰에서 원래 페이스를 회복했다고 말했으나, 여전히 컨디션은 안 좋다는 평이다. 결국 런던 올림픽 때도 8관왕에 도전하느냐로 고민하다가 자유형 200m는 포기하고 7개 종목만 나가기로 결정했으며 밥 보먼 코치도 이러한 결정을 지지해 줬다.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기대치에 비해서는 부진한 성적으로 런던 올림픽을 마감했다. 올림픽을 마치고 만 27세에 더 이상 이룰 게 없다는 이유로 은퇴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그런데 2014년 4월,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복귀를 선언했다. 그 이후, 4차, 5차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 특히 5차 그랑프리 100m 접영에서 52.13의 기록으로 우승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9월, 음주운전 혐의로 6개월 자격정지를 당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6개 종목에 출전하였다. 최종적으로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를 따냈으며, 은퇴선언 전인 런던 올림픽보다도 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남자 200m 개인혼영은 대회 4연패라는 기록까지 추가했고, 덤으로 단체전인 혼계영 400m, 계영 800m에서도 4연패를 기록했다.

혼계영 경기가 끝나고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예정대로 은퇴선언을 또 발표했다. 앞으로는 인명 구조를 위해 자신의 수영을 활용하고 싶고 아들과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고 하며 기자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펠프스의 나이는 32세로 수영 선수로서 매우 노장에 해당하는 나이임에도 마지막까지 미친 성적을 내며 팀에 공헌했기에 그야말로 최고의 마무리라는 평. 본인도 대회 초부터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라고 언급했다. 그렇게 마이클 펠프스는 영원한 수영계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수상 기록

마이클펠프스 수상 기록
마이클펠프스 수상 기록

 

수영황제

역대 최고의 수영선수이며 올림픽 최다 메달리스트이다. 보통의 경우 웬만큼 뛰어난 선수들은 경쟁자가 있기 마련인데 펠프스는 워낙 압도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어 흔한 라이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를 일컫는 말은 ‘수영황제’, 재미 삼아 부르는 별명은 ‘펠피시’(펠프스+피시). 스포츠계에서 ‘황제’라는 칭호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신이 내린 뛰어난 재능과 함께 최고의 노력까지 겸비한 흔히 말하는 즐기면서 노력하는 사전적인 의미의 천재형 인간이다. 수영이라는 한 종목을 넘어서서 전 세계 역대 모든 운동선수들 가운데 전설적인 선수로서 탑 5 안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통산 올림픽 커리어로는 금메달 23개 은 3개 동 2개로 합계 28개의 메달을 따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금메달 27개 은 6개 동 1개를 획득했다. 그리고, 세계 신기록을 39회 작성했으며, 기타 소소한 대회는 너무 많아서 집계 생략한다. 하도 메달을 많이 따서 올림픽 금메달 및 총 메달 개수가 독보적 1위이다. 어느 정도냐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한 206개국 중 170개 국가보다 통산 더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육상계 일인자인 우사인 볼트와 함께 21세기 초반 올림픽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또한, 개인전 금메달 13개는 고대 올림픽까지 포함해서 현존 올림픽 최고 기록이다. IOC에 따르면 이전까지 개인전 금메달 최고 기록은 12개를 기록한 로도스의 레오니다스(Leonidas of Rhodes)로, 기원전 152년에 세운 기록인데, 이를 거의 2천 년이나 지나서 경신한 것이다.

 

2007년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와 함께 유명인 모델을 기용하여 동화 속 장면들을 재현하는 디즈니의 광고 시리즈인 '디즈니 드림 포트레이트'에서 줄리앤 무어과 함께 인어공주의 남자인어 모델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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